::: 독서연구회 :::

미용사에게 배운 퇴고의 중요성
글쓴이 : 선생님 (sunbee70)	등록일 : 2015-10-08 13:31:52
세 번째입니다. 여전히 미용사는 절 기억하지 못합니다. 10년 넘게 다니던 단골 미용실을 저버리고 새로 찾은 곳입니다. 워낙 스타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늘 제 주문은 “단정하게” 한 마디였습니다. 사실 잘 깎아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구별할 줄 모르기에 뭐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. 다만 옆머리에 좀 뻗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. 이전 미용사나 현재 분이나 연배가 저보다는 좀 많으신 아주머니이십니다. (확인을 안 해봤지만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.) 그리고 미용 요금도 8천원으로 똑같습니다. 다른 것은 이전 미용실은 10회 당 1회 서비스인데, 현재 다니는 곳은 15회당 1회 서비스라고 합니다. (무슨 카드도 없고, 기억해서 해주겠다는데 별로 기대는 안하고 있습니다.) 그런데 머리 깎는 스타일은 좀 많이 다릅니다. 이전분은 시원시원하게 후딱 깎고, 샴푸 후 손볼 곳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십니다. 십년 넘게 다니면서 다시 손봐달라고 한 적은 딱 두 번입니다. 한 번은 아내가 따라갔을 때이고, 또 한 번은 그 바로 후입니다. 그냥 가면 안 기다리고 바로 깎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. 그런데 이번 분은 일단 머리를 한 번 깎습니다. 시간도 꽤 걸립니다. 그리고 샴푸 후 다시 머리를 다듬기 시작하는데 처음 깎는 시간 못지않게 세밀하게 손을 보십니다. 정성을 들인다는 마음이 듭니다. 그래서인지 아내는 확실히 질의 차이가 느껴진다고 합니다. 아내가 그렇게 말하니 저도 왠지 그런 것 같습니다. 그러니 단골을 과감히 배반한 것이겠지요. 머리를 깎는 일 하나도 결국 끝마무리가 어떠하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. 좋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. 보통 우리는 글을 쓸 때 글 쓰는 그 시간 자체에 큰 비중을 둡니다. 그런데 막상 글을 써보면 글쓰기 전 무엇을 쓸까?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. 계획이 서면 막상 글을 쓰는 데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. 그리고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을 다듬고 고치는 작업이 또 많이 걸립니다. 글쓰기에서는 ‘퇴고’라고 부르지요. 제 글이 잡글인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퇴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. 글을 쓰고 나서 묵혀두고 다시 읽으며 손봐야 하는데 보통 그냥 내놓습니다. 그건 제 급한 성격 탓일 수도 있고, 또 요즘 글이 인스턴트 음식처럼 가볍기 때문일 것입니다. 대부분 글을 밴드나 페이스북, 카스 등 SNS에 올리다보니 쉽게 올리고, 쉽게 지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진중하게 퇴고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. 그러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맞춤법의 오류부터, 문맥이 맞지 않는 글까지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. 무엇보다 큰 문제는 처음 이야기하려는 바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손보려면 다시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힘이 들기에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. 마치 워낙 지저분한 집에서 어찌 살까 싶은데도 손대기가 엄두가 안 나면 그냥 외면하고 대충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.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좋은 집에 살 수 없듯이, 퇴고 없이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. 퇴고를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는 것이 좋습니다. 글을 쓴 바로 다음 그 정신으로 글을 다시 읽어봤자 자아도취에 빠져 오류를 찾아내기 쉽지 않습니다. 일단 그 장소와 시간을 벗어나서 다시 마치 남의 글을 읽듯이 읽어야 그때서야 오류가 눈에 들어옵니다. 바둑이나 장기도 자기가 둘 때는 수가 안 보여도 훈수꾼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. 그리고 글을 꼭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은 퇴고의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.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글이라면 좋은 글이 아닙니다. 가장 중요한 것은 쓴 글이 과연 필요한 글인가? 자문해보는 것입니다. 솔직히 이 부분에 고민이 참 많습니다. 그런 엄격한 조건에 부합하는 글이 과연 몇 편이나 될까요? 그 기준을 들이댄다면 살아남을 글이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. 그래서 전 그냥 아주 좋은 글을 쓰기 보다는 잡문이라도 쓰는 것에 만족하고자 합니다. 그러나 비록 잡문을 쓰더라도 글 읽는 이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면 제대로 써야 합니다. 그래서 꼭 퇴고를 하는 습관을 가지려 합니다. 미용사가 애벌로 머리를 깎고 다시 정성을 다해 머리를 매만져서 완성시키듯. 그 미용사의 마음으로 제 글도 다시 손보려고 합니다. 그런데 인생이라는 글은 퇴고가 없으니 한 번 살 때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.

미용사에게 배운 퇴고의 중요성

글쓴이 : 선생님 (sunbee70)

등록일 : 2015-10-08 13:31:52

세 번째입니다. 여전히 미용사는 절 기억하지 못합니다. 10년 넘게 다니던 단골 미용실을 저버리고 새로 찾은 곳입니다. 워낙 스타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늘 제 주문은 “단정하게” 한 마디였습니다. 사실 잘 깎아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구별할 줄 모르기에 뭐라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. 다만 옆머리에 좀 뻗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.

이전 미용사나 현재 분이나 연배가 저보다는 좀 많으신 아주머니이십니다. (확인을 안 해봤지만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.) 그리고 미용 요금도 8천원으로 똑같습니다. 다른 것은 이전 미용실은 10회 당 1회 서비스인데, 현재 다니는 곳은 15회당 1회 서비스라고 합니다. (무슨 카드도 없고, 기억해서 해주겠다는데 별로 기대는 안하고 있습니다.) 그런데 머리 깎는 스타일은 좀 많이 다릅니다. 이전분은 시원시원하게 후딱 깎고, 샴푸 후 손볼 곳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십니다. 십년 넘게 다니면서 다시 손봐달라고 한 적은 딱 두 번입니다. 한 번은 아내가 따라갔을 때이고, 또 한 번은 그 바로 후입니다. 그냥 가면 안 기다리고 바로 깎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.

그런데 이번 분은 일단 머리를 한 번 깎습니다. 시간도 꽤 걸립니다. 그리고 샴푸 후 다시 머리를 다듬기 시작하는데 처음 깎는 시간 못지않게 세밀하게 손을 보십니다. 정성을 들인다는 마음이 듭니다. 그래서인지 아내는 확실히 질의 차이가 느껴진다고 합니다. 아내가 그렇게 말하니 저도 왠지 그런 것 같습니다. 그러니 단골을 과감히 배반한 것이겠지요.

머리를 깎는 일 하나도 결국 끝마무리가 어떠하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. 좋은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. 보통 우리는 글을 쓸 때 글 쓰는 그 시간 자체에 큰 비중을 둡니다. 그런데 막상 글을 써보면 글쓰기 전 무엇을 쓸까? 어떻게 쓸까 고민하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. 계획이 서면 막상 글을 쓰는 데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. 그리고 글을 쓰고 나서 그 글을 다듬고 고치는 작업이 또 많이 걸립니다. 글쓰기에서는 ‘퇴고’라고 부르지요.

제 글이 잡글인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퇴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. 글을 쓰고 나서 묵혀두고 다시 읽으며 손봐야 하는데 보통 그냥 내놓습니다. 그건 제 급한 성격 탓일 수도 있고, 또 요즘 글이 인스턴트 음식처럼 가볍기 때문일 것입니다. 대부분 글을 밴드나 페이스북, 카스 등 SNS에 올리다보니 쉽게 올리고, 쉽게 지울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진중하게 퇴고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.

그러다보니 가장 기본적인 맞춤법의 오류부터, 문맥이 맞지 않는 글까지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. 무엇보다 큰 문제는 처음 이야기하려는 바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으로 손보려면 다시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힘이 들기에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. 마치 워낙 지저분한 집에서 어찌 살까 싶은데도 손대기가 엄두가 안 나면 그냥 외면하고 대충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.

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좋은 집에 살 수 없듯이, 퇴고 없이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. 퇴고를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는 것이 좋습니다. 글을 쓴 바로 다음 그 정신으로 글을 다시 읽어봤자 자아도취에 빠져 오류를 찾아내기 쉽지 않습니다. 일단 그 장소와 시간을 벗어나서 다시 마치 남의 글을 읽듯이 읽어야 그때서야 오류가 눈에 들어옵니다. 바둑이나 장기도 자기가 둘 때는 수가 안 보여도 훈수꾼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. 그리고 글을 꼭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좋은 퇴고의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.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글이라면 좋은 글이 아닙니다.

가장 중요한 것은 쓴 글이 과연 필요한 글인가? 자문해보는 것입니다. 솔직히 이 부분에 고민이 참 많습니다. 그런 엄격한 조건에 부합하는 글이 과연 몇 편이나 될까요? 그 기준을 들이댄다면 살아남을 글이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. 그래서 전 그냥 아주 좋은 글을 쓰기 보다는 잡문이라도 쓰는 것에 만족하고자 합니다.

그러나 비록 잡문을 쓰더라도 글 읽는 이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면 제대로 써야 합니다. 그래서 꼭 퇴고를 하는 습관을 가지려 합니다. 미용사가 애벌로 머리를 깎고 다시 정성을 다해 머리를 매만져서 완성시키듯. 그 미용사의 마음으로 제 글도 다시 손보려고 합니다.

그런데 인생이라는 글은 퇴고가 없으니 한 번 살 때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.